클라리넷을 배우는 이들은 전문연주가를 목표로 하던, 취미연주인 이던 간에 자신의 연주력이 얼마인지 알고 싶어한다. 물론 이것은 클라리넷뿐 아니라 어떤 악기이던 마찬가지이고, 더 나아가서는 음악교육뿐 아니라 학습을 통해 이루어지는 모든 교육분야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때문에 모든 교육에는 평가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평가는 그 결과를 악용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올바른 교육/학습을 위해서는 사실 꼭 필요한 요소이다. 평가는 학습자의 수준이 어는 정도 되는지 알고, 그에 따라 장점을 살리고 단점은 줄이며 알맞은 교육과정을 제시할 수 있는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모든 교육과 마찬가지로 음악교육에 있어서도, 악기연주력, 나아가서는 음악적 능력을 정확히 평가하고자 하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특히 사회가 발전하면서 음악교육이 개인전수가 아닌 교육기관을 통해서 다수에게 전달되는 ‘음악교육의 교육기관화 Intuitionalization’ 가 이루어 지면서, 그 필요성은 더욱 증가했을 것이다.
하지만 악기연주력의 평가는 쉬운 문제는 아니다. 이는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는 마치 지능검사와도 같은 것이다. 특히 음악적 표현능력이란 미학적 판단을 해야 하는, 즉 아름다움을 개인의 주관적 감각을 통해 느끼고 그것을 뇌에서 인지한 후 평가하는 것으로, 완전히 객관적인 평가는 불가능한 능력이다. 관념적인 철학적 관점을 빼 놓고 과학적으로만은 평가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일단 ‘과학적’인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철저히 측정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 흔히 계량화라 말하는데,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직 우리의 과학은 양 quantity 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만 잴 수 있다. 예술의 영역에 속하는 악기연주는 그 행위의 아름다움이라는 질 quality 이 핵심부분이므로 계량화하여 과학적으로 측정하기에는 그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객관적인 과학적 측정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다움이라는 질적인 요소를 가능한 양적인 요소로 바꾸어야 한다. 이 때 주관적 관점을 완전히 제거하고, 누가 보더라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객관적인 요소는 결국 실수와 속도, 이 두 가지이다 (쉬운 말로 바꾸면 얼마나 틀리지 않고 빨리 할 수 있는가 이다). 실수와 속도는 음악연주뿐 아니라 다른 모든 인간의 행위 performance 의 질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다. 예술과는 다른 영역을 생각해보자. 스포츠 중 기록경기 (양궁이나 단거리경주 등) 를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때문에 이 두 가지 항목은 인지심리학이나 체육과학, 즉 과학의 영역에서 행위의 질을 평가할 때 언제나 기준으로 쓰이고 있다.
물론 위에서도 밝혔듯이 음악연주의 아름다움을 실수와 속도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음악의 아름다움이란 것은 이보다 훨씬 많은 구성요소로 되어 있으며 그 전체적인 유기성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객관적 평가의 기준을 찾다 보니 실수와 속도를 전면에 내세운 것뿐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음악교육자들은 악기연주의 종합적인 평가를 실수와 속도를 기준으로 삼는 기술적 표현능력 (객관적 판단)과 주관적 판단이 따르는 음악적 표현능력으로 나누어 하고 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악기를 잘 하는 것이냐?’라는 원초적인 질문에 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은 가장 먼저 자신이 악기로 표현하는 소리가 듣기 좋은 소리인지 알아보고 가능한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힘써야 한다. 무엇이 듣기 좋은 소리인가는 주관적 판단의 영역이므로 스스로 기준을 갖고 그에 다가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이 실수와 속도인데 이를 음악적 용어로 바꾸면 곡조 tune 와 빠르기 tempo 이다. 얼마만큼이나 악보에서 제시하고 있는 정확한 음높이와 음길이로 연주할 수 있는지, 또 주어진 빠르기에 얼마나 비슷하게 연주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 수준에서 한 발 더 나아가고자 한다면 그 다음 단계로, 악보에 표시된 모든 규칙들, 즉 악상기호나 셈여림 등등을 정확히 지키도록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한다. 필자의 이런 구분이 너무 기술적 능력에만 치우친 것이라는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악기를 통한 음악적 표현은 기술적 능력이 그 바탕이 되지 않고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구절의 아름다운 표현이나 해석에 있어서의 창의성 등등 높은 단계의 음악적 표현능력도 기본적인 기술적 표현능력 없이 이루어 질 수는 없다. 때문에 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은 가장 먼저 소리의 아름다움과 기술적 능력의 습득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음악교육의 교육기관화가 일찍 이루어진 유럽에서는 음악적 능력, 그 중에서도 악기연주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다. 평가시험은 모두 등급제이며 권위 있는 음악협회나 국가에서 공인된 음악교육기관에서 운영한다. 마치 우리나라의 태권도가 철저한 승급제와 협회운영으로 빠른 제도화를 이끌어 낸 것과 비슷하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이런 유럽의 음악등급 평가시험 중 클라리넷부분을 살펴봄으로써 클라리넷 연주능력을 어떻게 평가할 수 있는지에 알아보고자 한다.
다음에 소개할 영국과 독일의 음악등급 평가시험은 모두 위에서 잠깐 논의한 기술적 표현능력과 음악적 표현능력을 그 평가항목으로 한다. 시험은 전체적으로 이론과 실기시험으로 구성되며 모두 등급에 따라 그 난이도가 달라진다. 실기시험은 빠르기가 주어진 음계연주와 각 등급 난이도에 따른 곡의 연주가 포함된다. 음계연주가 반드시 포함되는데 이는 악기학습에 있어 얼마나 음계연습을 중요시 하는지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클라리넷의 경우 평가시험의 음계연주는 거의 대부분 장음계와 화성, 가락단음계, 삼화음음계, 3도음계 연주가 기본이고, 보통 암보로 할 것을 요구한다. 연주곡의 경우에는 난이도에 따라 등급에 맞게 분류를 해 놓은 곡목록을 미리 제시해 주고 그 중에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 진다.
영 국
영국에는 왕립음악학교 연합위원회 (Associated Board of the Royal Schools of Music, ABRSM) 가 주관하는 음악등급시험이 있다. ABRSM은 말 그대로 영국의 왕립음악학교들의 연합위원회이다. 영국의 왕립음악학교들은Royal Northern College of Music, Royal Academy of Music, Royal College of Music, Royal Scottish Academy of Music and Drama 를 가리킨다.
영국 왕립음악학교 연합위원회
음악등급시험은 악기를 배우는 학생들이나 성인취미연주인들을 위한 등급시험으로 영국에서는 음악을 배우는 모든 이들을 위해 아주 훌륭한 지침서 역할을 한다. 영국의 몇몇 음대에서는 아예 이 음악등급시험의 8등급 합격을 응시조건으로 내세우는 곳도 있다. 음악등급시험은 시창, 청음, 연주실기, 음악이론 등등 음악능력에 관한 모든 제반조건을 시험하기 위해 고안되었고, 무엇보다 각 해당사항을 매우 자세하게 분류해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음악등급시험 외에도 왕립음악학교 연합위원회가 주관하는 음악시험들은 영국은 물론 미국과 전 세계를 아우르는 영국연방 Commonwealth of Nations 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해마다 전세계 90개가 넘는 나라에서 620,000 여 명 이상의 응시자들이 참가하는 국제적인 음악능력 평가시험이다. 이 중 음악등급시험은 실기시험, 이론시험, 음악인기초, 재즈시험의 네 분야가 있다. 실기시험은 가장 쉬운 1등급부터 가장 어려운 8등급으로 나뉘고, 시험의 합격은 세 가지 방식으로 점수를 주는데 통과, 우수, 뛰어남이 그 것이다. 윗등급 응시를 위해 꼭 아랫등급을 합격할 필요는 없으나, 실기시험의 상위등급인 6-8등급의 응시를 위해서는 이론시험과 음악인기초 또는 재즈시험의 5등급 이상의 합격증이 필요하다.
음악등급시험의 모든 시험내용은 음악등급시험 내용목록 Syllabus 에 모두 나와 있어 이를 꼭 참조해야 한다. 내용목록은 몇 년을 주기로 바뀌며, 전체내용은 ABRSM의 인터넷 사이트에 공시된다.
음악등급시험 내용목록
http://www.abrsm.org/?page=exams/gradedMusicExams/latestSyllabuses.html
음악등급시험 Graded music exams
실기시험
가장 많은 응시자들이 참가하는 실기시험은 35가지 이상의 악기들을 위한 시험이 모두 있으며, 다음 네 가지 구성요소로 이루어 진다.
연주곡: 음악등급시험 내용목록의 List A, B, C 에서 한 곡씩 총 세 곡을 준비한다. 일반적으로 두 곡은 피아노반주와 함께, 한 곡은 무반주 독주로 연주한다. 각 곡당 배점은 30점, 총 90점 만점이고, 곡당 최소 20점 이상이 통과이다.
음계: 음계, 펼침화음, 분산화음 등등 응시등급에 따라 난이도가 어려워진다. 21점 만점에 14점 이상이 통과.
초견: 처음 보는 곡을 30초 정도 연주할 수 있어야 한다. 21점 만점에 14점 이상이 통과.
청음: 리듬과 선율을 기본으로 역시 응시등급에 따라 난이도가 바뀐다. 18점 만점에 12점 이상이 통과.
음악등급시험의 만점은 150점이며, 합격은 100점 이상이 통과. 120점 이상은 우수, 130점 이상은 뛰어남이다.
이론시험
음악이론에 관한 필기시험으로 100점 만점에 66점 이상이 통과, 80점 이상이 우수, 90점 이상이 뛰어남이다. 역시 8등급으로 나뉘며 이 이론시험의 5등급을 통과해야 실기시험의 6-8등급을 응시할 수 있다.
음악인기초
주로 시창시험으로 리듬, 선율, 악보에 있는 내용, 즉흥연주 등을 기억만으로 노래로 부르고,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지 시험한다. 역시 8등급으로 나뉜다.
재즈시험
새로 추가된 시험으로 1999년 재즈 피아노 시험 이후로 2009년 현재 플륫, 클라리넷, 색소폰, 트럼펫, 트롬본이 추가되었다. 등급은 1-5등급으로 나뉜다. 음악인기초의 5등급이나, 해당악기 재즈시험의 5등급을 통과해야 실기시험의 6-8등급을 응시할 수 있다.
자격시험 Diplomas
직업연주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자격을 검정하는 시험으로, 당연히 음악등급시험 8등급 이상으로 어렵고 일반 음악대학의 졸업시험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응시할 수 있다. 음악연주, 음악지휘, 악기/성악지도의 세 분야이며, DipABRSM (Diploma of The Associated Board of the Royal Schools of Music), LRSM (Licentiate of the Royal Schools of Music), FRSM (Fellowship of the Royal Schools of Music) 의 세 등급이다. FRSM이 가장 상위 등급이다.
DipABRSM 의 응시자격은 해당악기의 음악등급시험 중 실기시험 8등급 합격이며, 상위등급인 LRSM은 DipABRSM의 합격자, FRSM은 LRSM의 합격자에 한한다. 응시자가 이와 비슷한 다른 자격을 갖추었을 경우 응시자격으로 인정해 주는 예외조항이 있다.
자격시험의 모든 시험내용은 자격시험 내용목록 Syllabus 에 모두 나와 있어 이를 꼭 참조해야 한다. 내용목록은 몇 년을 주기로 바뀌며, ABRSM의 인터넷 사이트에 공시된다. 여기서는 음악연주 분야에 대해서만 살펴 보겠다.
자격시험 음악연주 내용목록
http://www.abrsm.org/resources/performanceComplete.pdf
음악연주
독주연주가로서의 자격을 검정하는 시험으로, 크게 연주회와 구술시험, 초견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 연주회 시간은DipABRSM이 약 35분, LRSM이 40여분, FRSM이 50여분이다. 연주회 곡목은 내용목록에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는 연주곡목록 중에서 고르거나, 또는 그에 상응하는 난이도의 곡으로 응시자가 선택한다. LRSM 부터는 관현악단 연주전공 (발췌곡연주) 이나 실내악 연주전공 (실내악연주)을 연주회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도 연주회 시간의 최소 1/3 이상은 독주곡으로 채워야 한다. 연주회 평가점수는 60점 만점에 24점 이상이 통과이다.
구술시험 전에는 연주회 곡목에 관한 해설서를 제출해야 한다. 해설서 분량은 DipABRSM이 약 1,100 단어이며 상위등급으로 갈수록 많은 분량을 제출해야 한다. 해설서에는 악곡분석뿐 아니라 음악역사 등 음악에 관한 전반적인 면을 담아야 하며, 이는 구술시험에서 시험관의 대화를 통해 다시 검사 받는다. 해설서의 평가점수는 없지만, 불합격 및 평가등급이 있다. 구술시험의 시간 역시 DipABRSM은 12여 분이지만, 상위등급으로 갈수록 길어진다. 구술시험은 25점 만점에 10점 이상이 통과이다. 초견은 모든 등급이 동일하게 10여 분이다. 악보를 처음 받고 5분은 준비시간, 5분은 연주시간이다. 물론 난이도는 상위등급으로 갈수록 어려워 지고, 가장 어려운 FRSM의 초견 연주난이도가 음악등급시험 중 실기시험 8등급의 초견 난이도이다. 초견은 15점 만점에 6점 이상이 통과이다.
참고고리
위키백과 http://en.wikipedia.org/wiki/Associated_Board_of_the_Royal_Schools_of_Music
ABRSM 공식사이트http://www.abrsm.org/?page=home
미 국
미국 쪽의 음악능력 평가시험에 대해선 조사해 본 바가 없어 잘 모르겠지만, 영국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미국의 제도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하고, 무엇보다 일반적인 음악공부를 하는데 필요한 자료를 찾는 이들을 위해 아주 훌륭한 사이트를 하나 소개한다. 미국 캘리포니아 음악교사협회 (Music Teachers’ Association of Califonia, MTAC) 의 일원으로, 미국 산타 클라라 대학교의 교수진 중 한 명이자 개인교사로 활동하고 있는 클라리넷 연주가 바네톤Ginger Kroft Barneton의 사이트이다. 이 사이트 Student Corner (http://www.gingerk.net/studentcorner.htm) 의 오른쪽 하단 Clarinet Information Sheets 드롭다운 메뉴를 보면 클라리넷 학습에 유용한 자료들이 pdf 파일들로 올라와 있는데, 이 메뉴의 아래를 보면 MTAC Level Three, Four, Five… 들이 올라와 있어, 미국의 클라리넷 연주능력 평가시험의 수준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사이트가 유용한 것은 무엇보다 왼쪽 상단의 Music Websites for Students 드롭다운 메뉴에 소개되어 있는 음악이론, 음악사전, 클라리넷 운지, 각종 청음연습 등을 공부할 수 있는 온라인 사이트들이다 (물론 모두 무료이다 ^^). 특히 음악사전은 온라인 사전으로 그 내용이 방대하고, 음악이론은 체계적으로 학습이 가능하도록 구성이 되어 있으며, 청음연습은 현 인터넷 기술을 잘 살려 직접 들어가며 연습할 수 있도록 고안된 사이트들이다. 모두 필자가 매우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이트들로, 일반음악이론을 공부하려는 사람들에게 적극추천하고 싶다.
또 평가시험은 아니지만, 미국쪽 클라리넷 교사나 음대 클라리넷 교수들의 홈페이지를 살펴보면 학생수준별 교수과정 Syllabus 를 제시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다. 이런 교수과정은 교사나 특히 독학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 참고할 만한 여러 교수과정 중에 미국에서 널리 쓰이는 데이빗 하이트 David Hite 의 교수과정표를 소개하고자 한다. 오래 동안 클라리넷 교사로 활동했던 데이빗 하이트는 그의 ‘클라리넷연주인 학습지침 A Clarinettist’s Study Guide’ 에서 교수과정을 7단계로 나누고, 각 과정에 맞는 학습목표와 이론수준, 실기에 필요한 클라리넷 교본과 연주곡목들을 상세히 나누어 놓았다. 그 내용이 매우 충실해서, 다른 미국 클라리넷 교사들의 교육과정도 보통 이를 참고해서 만들어졌다고 보면 된다.
데이빗 하이트의 클라리넷연주인 학습지침
http://www.smcpublications.com/studyguides/clarinet/index.html
© world copyright 2009 by Seung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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