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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 제작사소개

르블랑 G. Leblanc 회사의 역사




이번에는 주요 클라리넷 제작사 중 가장 우여곡절을 많이 겪은 회사인 . 르블랑 G. Leblanc 의 역사에 대해 기술한다. 2013년 1월 현재 회사사정 때문인지 회사 공식사이트도 내용이 부실하다. 본문의 내용은 클라리넷사이clarinetperfection 을 인용했고 위키피디아를 참고했다. 역자주는 읽는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역자가 직접 서술하였다.


내용출처

http://www.clarinetperfection.com/clsnLeblancInfo.htm

International Directory of Company Histories, Vol. 55. St. James Press,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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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블랑 역사의 시작: 노블레

한국에는 블리스 모델 이 외에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지만, 르블랑 Leblanc 사는 주요 사업지인 미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 역사 역시 매우 오래되어 기원을 찾자면 프랑스의 루이15세까지 올라간다. 루이15세는 궁정음악을 위해 악기제조업을 진흥시켰으며, 이에 노블레 Noblet 라는 이름으로 1750년 라 꾸뛰르-부세 La Couture-Boussey 지역에 목관악기 제작공방이 설립된다. 노블레 가문에 의해 운영된 이 공방은 나중에 발명된 악기인 클라리넷도 제작했으며, 유럽에서 프랑스를 목관악기 생산의 중심지로 만드는데 큰 역할을 한다.

 

1904년 노블레 가문의 마지막 후계자가 사망하면서, 회사의 운영권은 죠지 르블랑 Georges Leblanc 에게 넘어간다. 죠지는 파리에 지. 르블랑 G. Leblanc 주식회사를 소유하고 있었지만, 라 꾸뛰르-부세에 있는 노블레 생산라인을 이용하여 클라리넷을 제작했다.

세계1차대전을 거친 후 르블랑사는 죠지의 아들인 레온 Leon 이 운영을 맡고, 이 시기에 회사는 많은 성장을 거둔다. 르블랑사는 찰스 우브나겔 Charles Houvenaghel 이란 음향학자와 협동작업을 했고 이를 위해 음향연구실도 차려 주었다. 관악기 제작사가 전문적인 음향연구실을 설립한 것은 아마도 르블랑사가 최초일 것이다. 르블랑사는 이 연구실에서 나온 연구결과를 악기제작에 적용해서 수많은 성과를 얻는다.

 

레온은 파리음악원에서 1등 입상을 할 정도로 재능 있는 클라리넷 연주자였지만, 가업을 잇기 위해 사업에 투신했다. 특히나 악기제작에 있어 과학적인 접근을 중요시 했는데, 음악은 예술이다, 하지만 그것은 과학법칙을 따른다. (Music Trades, 1996) 라고 자신의 소신을 밝힐 정도였다. 이런 노력으로 르블랑사는 안정적인 품질, 연주용이성, 그리고 기계적인 혁신을 계속 추구하여 오늘의 명성에 이르게 된다.

 

세계1차대전 이후 미국내 르블랑사

프랑스의 지. 르블랑 주식회사는 미국내 유통을 위해 1921년부터 월터 그레취 Walter Gretsch 를 사업파트너로 삼는다. 처음에는 월터에게 독점유통권까지 주면서 시작했지만, 사업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겨 비토 파스쿠치 Vito Pascucci 를 새로운 파트너로 정한다.

 

비토 파스쿠치는 위스콘신의 이탈리아 이민자의 아들이었다. 어려서부터 트럼펫을 배웠지만, 연주 이외에도 악기수리에 늘 관심이 많았다. 이후 비토는 군악대를 거쳐 유명한 글렌 밀러 악단에 합류하는데, 재미있는 것은 밀러악단에 합류하게 된 계기가 연주력이 뛰어나서라기 보다는 밀러가 비토의 악기수리능력에 반해서 였다는 점이다. 비토는 밀러와 함께 품질이 좋은 유럽산 악기를 수입해서 미국에서 판매하는 글렌 밀러 음악사 사업구상까지 했지만, 1944년 영국해협을 건너던 글렌 밀러악단을 태운 비행기가 의문의 행방불명을 당한 뒤 단신으로 프랑스로 와서 노블레 클라리넷을 생산하던 르블랑 가족을 만나게 된다. 독일 나찌 점령아래 거의 망해가고 있었던 르블랑사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고, 죠지와 레온 르블랑은 미국에서 건너온 젊은 비토에게 악기제작,수리에 관한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미국내에서 자신들의 악기를 유통하는 사업을 제안한다.

 

이후 르블랑사는 월터와의 사업관계를 정리하고, 1946년 비토와 함께 지분 5050 협업으로 르블랑 Leblanc USA를 설립한다. 프랑스 르블랑사는 중심지인 뉴욕에서 상점을 열 것을 원했지만, 자본이 없었던 비토는 자신의 고향인 케노사 Kenosha 에 조그만한 상점을 연다. 악기수리에 재능이 있었던 비토는 이 곳에서 프랑스에서 수입한 르블랑 클라리넷을 재정비해서 판매하였다. (역자주: 세계1차대전의 여파로 클라리넷의 품질이 그리 좋던 시절이 아니었다.)

다행히 전쟁은 곧 끝이 났고, 미국에서는 베이비붐 세대의 영향으로 무엇보다 학교에서의 음악프로그램이 빠르게 성장했다. 르블랑 USA는 이 점에 착안해 저가의 입문자용 악기공급에 착수했다.

 

1960년대 성장기

학교 음악프로그램으로 인해 악기시장은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으며, 1950년대에 이미 금속 클라리넷을 대신해 플라스틱 클라리넷이 인기가 좋았다. 플라스틱 클라리넷의 수요는 늘어만 갔고, 프랑스 르블랑사의 생산만으로는 그 수요를 맞출 수가 없었다. 르블랑 USA 사는 스스로 클라리넷을 제작생산하기로 결정, 브랜드명은 비토 Vito 로 하였다.

미국 르블랑사는 학교음악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학교의 다양한 음악프로그램 발전을 위해 많은 투자를 했고, 학생들을 위한 악기대여제도도 이때 첫 선을 보였다. 목관악기에 한정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1964년 금관악기 제작사인 프랭크 홀톤 Frank Holton 사를 합병하고, 이후에도 소형 악기제작사들을 합병해 나가면서 성장을 거듭하여 미국 르블랑사는 마침내 1980년대 이르러서는 미국에서 세 번째로 큰 관악기 제조사가 된다.     

 

1980년대 프랑스 르블랑사 합병

비토 파스쿠치는 80년대에 접어들면서 프랑스 르블랑사를 인수할 것을 심각히 고민하였다. 비토는 이미 명성이 확실한 프랑스 르블랑사의 생산라인을 그대로 사용하려고 했고 본격적인 협상은 1986년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가장 오래된 회사 중 하나인 프랑스 르블랑사를 미국회사가 인수한다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라 꾸뛰르-부세에 위치한 자회사인 노블레의 역사적 가치 때문에 프랑스 르블랑사는 프랑스에서 국가유산대접을 받았으며 인수협상에 프랑스 무역부가 직접 관여할 정도였다. 1991년 비토의 아들인 레온 파스쿠치 Leon Pascucci (아버지인 비토가 사업파트너였던 레온 르블랑 Leon Leblanc 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것) . 르블랑 G. Leblanc 회사의 사장에 취임하고, 1993년 미국 르블랑사가 지난한 과정을 통해 프랑스 르블랑사를 합병하는데 결국 성공했다. 프랑스 공장에는 약 100여 명의 직원이, 미국 공장에는 400여 명의 직원이 있었고, 인수금액은 약 미화 375십만 불에 달했다.

 

2000년대 이후의 복잡한 전개 

인수합병을 마친 후 지. 르블랑사는 레온 파스쿠치의 지휘아래 90년대에도 계속 성장했지만, 2003년 프랑스 공장이 석연치 않은 화재로 인해 큰 피해를 입는다. 라 꾸뛰르-부세의 원목저장고에 화재가 나서 약 3백만 불에 달하는 피해를 입는데, 다행히도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고가의 원목자재들은 어느 정도 구할 수 있었다.

 

화재의 여파 때문인지 지. 르블랑 G. Leblanc 사는 2005년 콘-셀머 Conn-Selmer (역자주: 셀마 클라리넷편에서 설명한 미국 콘-셀마 회사. 미국에서 가장 큰 악기회사이다.) 사에 합병된다. 이 기간에 르블랑사는 프랑스 공장의 생산라인을 멈추고, 캐나다의 모리 바쿤 Morrie Backun (역자주: 우리에게도 친숙한 바쿤배럴의 그 바쿤 맞다.) 에게 클라리넷 제작을 맡긴다. 전문연주가용 악기시장에 안착하는 듯이 보였지만 이상하게도 이 협업은 2010년에 들어와 중단된다. (역자주: 현재 바쿤은 자신의 이름을 걸고 독자적으로 클라리넷을 생산하고 있다.)

 

또한 2007년부터 르블랑사는 프랑스에서 제작되어 많은 호평을 받았던 모델 오푸스 Opus

콘체르토 Concerto, 중급악기로 역시 인기모델이었던 소나타 Sonata 와 기타 다른 모델들의 생

산을 차차 철수해 갔다. 2013년 현재 콘-셀마 소속 르블랑사는 더 이상 전문가급 클라리넷은

출시하지 않고, 중저가 모델인 블리스 Bliss 라인만 가동하고 있다. . 르블랑 G. Leblanc 사가

왜 오랜 역사를 거쳐 어렵게 획득한 클라리넷 제작사로서의 명성을 지키지 않고, 중저가 클라

리넷 모델만 출시하는지는 아직 의문이다. (역자주: 뷔페 역사편을 봐도 알 수 있듯이 2008

뷔페사는 라 꾸뛰르-부세의 공장을 인수했는데, 이 때 인수한 공장이 바로 지. 르블랑사의 프

랑스 공장생산라인인 것으로 보인다. 추측하기에 모회사인 콘-셀마사가 자회사인 르블랑사를

프랑스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자신만의 회사로 키우려고 하는 것 같은데, 더 지켜봐야 알 것 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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