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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 제작사소개

피터 이튼 Peter Eaton 클라리넷 제작소 방문기

 

방문일: 2010년 6월 16일

 

오래 전부터 별러오던 이튼 클라리넷 제작소 방문을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마침 6월에 런던에 갈 일이 있어, 피터 이튼씨를 만나기로 미리 계획을 짜 둔 것이다.

피터 이튼 Peter Eaton 씨는 영국의 클라리넷 제작자로 그가 제작생산하는 Peter Eaton Clarinet은 그 뛰어난 품질로 전문연주가나 동호인 사이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고 있다 (이튼 클라리넷에 관한 소개는 이전 기사인 소량생산 클라리넷 유럽편에서 이미 한 적이 있다: http://dr-klar.tistory.com/entry/highend-clarinet)


이튼 클라리넷은 뷔페나 셀머 클라리넷처럼 대량생산되는 악기가 아니고, 또 중간소매상을 거쳐 판매되지도 않기 때문에, 이를 구입하거나 시연하기 위해선 제작소를 직접 방문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필자의 방문목적 역시 소문으로만 접했던 이튼 클라리넷을 직접 시연해보고, 그 품질을 확인해 보는 것이었다.

 

이튼 클라리넷 제작소는 런던에서 기차로 한 40분 걸리는 남부 지역인 Effingham 이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런던 워털루역에서 기차가 있어서 찾아가는데 그리 어렵진 않았다. Effingham 이 작은 동네이고 버스연결이 많지 않아, 기차역까지 이튼씨의 부인이 차로 직접 데리러 나와 주었다. 이튼씨의 부인 역시 직업연주가로 활동하고 있고, 클라리넷 제작에도 직접 참여한다고 하였다.



Effingham 기차역

 

기차역에서 채 5분이 못되어 도착한 제작소는 일반 가정집이었으며, 이튼씨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이튼씨 부부는 필자를 방문객을 위해 악기를 시연할 수 있는 방으로 안내해 주었고, 클라리넷 제작은 대부분 위층에서 한다고 하였다. 몇 달 전부터 사전연락을 충분히 해 두었기 때문에, 시연해 볼 악기와 나팔꼭지들이 미리 잘 준비되어 있었다. 이러한 소형제작사를 방문하기 위해선 사전에 연락을 취해 계획을 잘 잡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판매상이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소량생산이라 물량이 충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이튼씨와 그의 부인의 첫인상은 조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였다. 이 모든 준비를 저를 위해 특별히 해 주신 거냐고 농담조로 물었더니, 오후에 방문객이 한 명 더 있어 특별히 신경을 쓴 것이라고 대답했다. 필자가 방문한 것은 오전이었다.



 

시연하기 위한 방과 이튼씨 부부가 미리 준비해둔 클라리넷들
 

숨돌리기 위해 물 한잔 마시고 바로 시연에 들어갔다.

먼저 엘리트 모델부터 시작했다. 이튼 클라리넷은 Elite 모델과 International 모델, 이렇게 두 모델이 생산된다. 엘리트 모델은 전통적인 영국 클라리넷으로, 관지름이보다 넓어서 연주자가 내쉬는 바람에 대한 악기의 저항이 작기 때문에, 집중된 소리보다는 유연한 소리를 내주는 악기이다. 통의 지름 역시 일반 프랑스식 클라리넷들보다 넓기 때문에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나팔꼭지 (마우스피스) 들과는 맞지 않는다. 때문에 이튼씨가 엘리트 모델 규격에 맞는 나팔꼭지들을 따로 제공해 주었다. 이튼씨는 원래 나팔꼭지 제작자로 먼저 명성을 얻은 인물이기에, 꼭지선택에 있어 상당히 신경 써주는 모습을 보였다. 새 나팔꼭지를 선택할 때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현재 쓰고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찾기에, 나에게도 현재 쓰고 있는 나팔꼭지를 보여달라고 하였다.



이튼 클라리넷 엘리트 모델

 

필자가 현재 쓰고 있는 나팔꼭지는 Vandoren M30 13series 이다. 필자의 꼭지를 건네 받은 이튼씨는 적합한 피스를 찾으러 위층으로 올라갔는데, 잠시 후 내려오더니 필자에게 질문을 했다. 비슷한 꼭지를 찾기 위해 항상 규격을 재는데, 필자의 피스가 좀 독특하다는 것이다. 뱅드렝 나팔꼭지야 흔히 접해서 잘 알고 있는데, 필자의 꼭지는 팁오프닝은 중간 정도에 가까운데 페이싱이 너무 길어서 비슷한 피스를 찾기가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필자의 꼭지가 독특하다기 보다는 13시리즈가 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아마 이튼씨가 아직 접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B40도 좋아하니까 그와 비슷한 것이거나, 아니면 그냥 팁오프닝과 페이싱이 전부 중간정도인 꼭지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다.

 

잠시 후 이튼씨가 몇 개의 나팔꼭지를 들고 내려왔다. 자신은 팁오프닝 1.23mm 를 중간기준으로 본다며 그 보다는 약간 오프닝이 작은 꼭지들도 몇 개 가져왔다 (팁오프닝 몇 mm를 중간기준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문제는 제작자들마다 주장이 다르지만, 대개 1.20mm 로 본다). 그 중 엘리트 모델용, 그러니까 관지름이 넓은 꼭지들부터 엘리트 모델과 조합해가며 시험해 보았다.

 

지속음, 음계, 텅잉 등 기본적인 소리내기와 익숙한 연습곡들을 몇 곡 연주해 본 후, 가져간 조율기로 각 음의 음고도 체크해 보았다. 영국식 클라리넷은 필자도 처음 불어보는지라 기대를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비브라토가 자유롭게 나거나 그닥 밝고 가벼운 음색은 아니었다. 물론 필자가 영국식 클라리넷에 익숙지 않으니, 그 특성을 잘 살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프랑스의 뷔페나 셀머 클라리넷과는 분명히 다른 음색이란 것이다. 필자가 느낀 엘리트 모델은 소리의 집중성은 떨어지지만 그만큼 좀 더 퍼지고 뿌연 안개 같은 음색이였다. 그 차이 때문에 프랑스 클라리넷을 오랫동안 써온 필자 같은 사람들은 처음 불어보고 바로 매료될만한 음색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 악기의 조율문제나 각각 음들의 밸런스, 마개조작의 편의성, 악기의 마감정도, 나무재질 등은 매우 뛰어난 고급악기라고 평가하고 싶다.  

 

다음은 인터내셔날 모델.

인터내셔날 모델은 이튼씨가 엘리트 모델 이후 발표한 클라리넷으로 관지름을 좁게 해서 보다 프랑스식 클라리넷에 가깝게 만든 모델이다. 나팔꼭지도 엘리트 모델과는 달리 우리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뵘식 나팔꼭지를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먼저 이튼씨가 제공해준 나팔꼭지를 다 시험해 봤지만, 정확한 평가를 위해선 아무래도 필자가 사용하는 꼭지를 그대로 써 보는 것이 낫겠다 싶어 필자의 M30으로 시연을 계속했다.



이튼 클라리넷 인터내셔날 모델


험연주 방식은 엘리트 모델과 동일하게 하였다. 한가지 특이한 점을 발견했는데, 음고가 약간 낮게 나오는 것이었다. 악기도 충분히 따뜻한데 왜 이럴까 싶어 조율기로 여러 번 검사를 해봐도 마찬가지였다. 필자의 나팔꼭지가 미국연주자들을 위해 음고를 440Hz 에 맞춘 13시리즈라고는 해도, 필자의 악기인 뷔페 RC와의 조합에선 그닥 음고가 낮지 않기 때문이다. 약간 짧은 통으로 바꾸어서 조율을 해봐도 440Hz를 기준으로 해서 계속 조금씩 낮게 나왔다. 이후에 이 조율문제 때문에 이튼씨에게 이튼 클라리넷은 440Hz 442Hz 중 어느 음고를 기준으로 제작되는지 이메일로 질문했는데, 음고문제는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너무 많고 특히 연주자마다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이튼 클라리넷의 음고는 몇이다 라고 정확히 말해줄 수 없다고 답변했다. 이에 필자는 스스로 시연해본 경험을 바탕으로 이튼 클라리넷은 440Hz를 기준으로 제작하지 않는가 추측한다.  

 

인터내셔날 모델의 음색은 이튼씨의 설명대로 좀 더 프랑스 클라리넷에 가까웠다. 확실히 악기의 저항이 좀더 느껴졌고, 그만큼 소리의 집중성과 뻗어나가는 정도도 엘리트 모델에 비해서는 더 좋았다. 하지만 여전히 프랑스 클라리넷의 음색과는 약간 다른 영국식 클라리넷 특유의 퍼지는 듯한 음색이 살아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방문하기 전에 이튼 클라는 약간 무겁다는 평을 본 적이 있는데, 실제로 시연해보니 그닥 무거운 감도 없어서 좋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무거운 모델은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이튼 클라리넷에 대한 총평을 내리자면, 역시 클라리넷 연주자들 사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악기답게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난 틀림없는 고급악기라고 평가하고 싶다. 필자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이 들었던 부분은 악기의 반응성과 밸런스가 특히 좋아서,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표현이 쉬웠으며, 같은 세기로 불 때 특정 음이 도드라지는 문제가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BbA 클라리넷의 차이도 매우 작아서 두 악기를 바꿔가며 연주할때 이질감이 크지 않았다. 무엇보다 소규모 제작소답게 악기의 마지막 셋업을 제작자 자신이 직접하기에 굳이 여러 대 불어보지 않고 미리 준비해준 악기만 불어도 악기의 상태가 바로 연주회에 써도 될 만큼 완벽했다. 그리고 개인취향이겠지만,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디자인에도 더 점수를 주고 싶었다.

 

그런데 보통 이 정도의 고급형 클라리넷에 있어야 할 Eb키가 없어서, 이튼씨에게 Eb키는 추가사항이냐고 물었더니 자기 클라리넷에는 Eb키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키를 추가하기 위해서는 악기 디자인 전체를 바꿔야 하는 문제도 있고 (사실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Eb키는 마개만 추가할뿐 추가구멍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게 되면 역시 단가가 올라가고, 자신의 판단으론 Eb키가 꼭 필요하지도 않기에 추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기사를 읽는 독자들의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이튼 클라리넷을 뷔페 클라리넷과 비교해 본다면 악기음색은 개인취향이니 제외하고, 악기의 조율문제, 반응성, 밸런스, 마개조작의 편의성, 악기의 마감정도, 나무재질 등을 종합해 보았을 때 - 최소한 페스티발 급이거나 그 이상의 등급에 속하는 악기라고 필자는 평가한다. 이튼씨 스스로 제시하는 판매가격도 이를 뒷받침한다. 일반 페스티발 거래가격보다는 약간 비싼 가격을 제시하는데, 이는 상당히 고가인 이튼 나팔꼭지를 포함한 가격이고, 자신의 나팔꼭지를 구입할 의향이 없다면 그 가격을 빼준다고 했다. 결국 악기만 놓고 보면 페스티발과 거의 비슷한 가격인 셈이다.

 

이 정도 품질의 악기라면 이미 연주자들 사이에서 평가도 좋으니까, 구입을 위해서는 꼭 영국을 와야 하기 때문에 고객에게 항공료 빼주는 셈치고 가격을 조그만 내리면 세계시장을 상대로 뷔페 클라리넷과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지 않겠냐는 필자의 질문에, 자신들도 가격정책에 대해 고심을 하는데 어차피 소량생산 체제라 더 이상 단가를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이튼씨는 답했다. 지금도 주문이 충분한지라 제작소를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없고, 아직 세계시장 마케팅은 할 계획도 없고 또 그럴 필요도 없으니, 수요가 더 많아져서 자연스럽게 회사가 커지면 그 때가서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튼씨 부부


시연을 마치고, 이튼씨 부부와 대화를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이튼씨는 일하는 중이라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었지만 클라리넷 관련질문에 대해서는 성실히 답해 주었고, 특히 자신의 일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는 사람임을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이튼씨 부인은 약간 더 적극적인 스타일이었고, 역시 이튼 클라리넷에 커다란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필자에게 자기네 제품은 진짜 핸드메이드 클라리넷인 점을 강조했는데, 이 핸드메이드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약간 다르지만 굳이 논쟁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필자가 클라리넷 전문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하고, 이튼씨가 동의한다면 이번 방문기를 블로그에 올려도 좋겠냐고 물어보았다. 이튼씨는 좋은 평만 써준다면 동의하겠다는 물론 농담이었다 말로 허락해 주었다. 부인이 내게 혹시 한국사람이냐는 질문을 했는데,  시연 도중 필자가 불은 아리랑을 듣고는 마침 자기 제자 중에 한국인 학생이 있어 아는 곡조라며, 그 학생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으니 필자의 클라리넷 블로그 주소를 알려달라고 친근감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피터 이튼 클라리넷 홈페이지

http://www.eatonclarinets.freeserve.co.uk/




* 기사에서 소개한 악기사양이나 가격 등은 제작사의 재량에 따라 임의대로 변경될 수 있습니다. 이런 사항에 대해서는 글쓴이의 책임이 없음을 밝혀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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