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
장소: 발덴부흐 시립교회
연주가: 세바스티안 만쯔, 클라리넷/ 마틴 클레트, 피아노
연주곡목:
생상 Camille Saint-Saëns 1835-1924, 클라리넷 소나타 작품번호 167
프랑쉐 Jean Françaix 1912-1997, 주제와 변주
뿔렁 Francis Poulenc 1899-1963, 클라리넷 소나타
드뷔시 Claude Debussy 1862-1918, 프미리어 랩소디
미요 Darius Milhaud 1892-1974, 스카라므슈 작품번호 165b
한 2, 3년 전인가는 튀빙엔 근방에서 볼만한 연주회들이 많았는데, 이후 한동안 클라리넷 연주회가 뜸했다. 물론 볼만한 연주회도 몇 개 있었다 (예를 들어 샤론 캄의 슈포어 협주곡 연주회, 가보지 못한 것을 아직까지 아쉬워하고 있다). 주기적으로 생기는 치열하고 밀도있는 연주회에 대한 갈증 때문인지 2월 14일 베를린에서 열리는 줄리안 블리스의 연주회에 가볼까도 잠시 고민해봤지만, 아무래도 베를린까지는 너무 멀어서, 주변에서 열리는 클라리넷 연주회를 열심히 검색해 보았다.
검색 중 튀빙엔 근처에서 열리는 클라리넷 연주회 하나를 발견했다. 이중주 률 Duo Riul 연주회란다. ‚률 Riul’ 가만있자, 이건 윤이상 선생의 이중주작품 이름인데, 한국어로 팀 이름을 지었나? 흥미가 생겨 연주회정보를 좀 더 살펴보았다. 클라리넷에 세바스티안 만쯔 Sebastian Manz, 잠깐 만쯔라면 뮌헨에서 열리는 ARD 국제콩쿨에서 몇 십년만에 클라리넷으로 1등상을 탄 것으로 유명해진 신인연주자가 아닌가... (ARD 국제콩쿨은 악기부문별로 등수를 매기지 않고, 모든 입상자들을 1, 2, 3위로 나누어 시상하는 방식이다. 물론 경우에 따라 입상자가 없을 수도 있다). 거기다 그 유명한 자비네 마이어가 스승인 것으로도 알려져 있고 (자비네 마이어는 현 뤼벡음대 Lübeck Musikhochschule 교수로 재직 중이며 만쯔는 그 학교 재학중), 무엇보다 독일연주가임에도 불구하고 연주회 곡목들을 모두 현대 프랑스 클라리넷 작품으로 채운 점이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오늘날 국제적인 경력을 쌓길 원하는 음악가라면 국제콩쿨 (국제음악경연대회) 은 하나의 커다란 관문이자 가장 빠른 등용문이다. 특히 유명 관현악단의 단원이 되려면 채용시험 응모시 국제콩쿨 입상경력이 매우 중요한 이력이 된다. 이러한 풍토는 국내에서도 점점 그 당위성을 얻어서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내의 유명 오케스트라들은 국제콩쿨 입상경력을 이미 중요한 경력으로 평가하고 있다. 물론 음악콩쿨의 존재가치에 대해서는 언제나 철학적인(?) 의견들까지 오고 가는 찬반론이 팽팽한 문제이지만, 무엇이든 우열을 나누는 것은 일종의 자연섭리이기에 인간의 연주행위가 존재하는 한 콩쿨 역시 존재하리라 생각한다. 그러니까 필자는 콩쿨 필요악론자이고, 어차피 없애지 못할 제도라면 가능한 합리적으로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ARD 국제음악콩쿨은 매년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서양고전음악계에서 실로 대단한 권위를 자랑하는 콩쿨 중 하나이다. ARD는 독일공영방송국으로 이 음악경연대회의 주최자이다. 이 콩쿨에서의 입상은 곧 세계적인 직업연주가로서의 성공을 보장할 정도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의 많은 스타들이 이 콩쿨을 통해 등장했다. 한국인 입상자로는 피아노의
클라리넷계에서 중요한 콩쿨로 인정받는 또 다른 국제대회로는 덴마크에서 열리는 칼 닐센 국제음악콩쿨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칼 닐센 콩쿨은 역사가 오래된 대회는 아니지만 오르간, 플륫, 바이올린, 클라리넷의 부문이 해마다 돌아가면서 한 악기부문만 열리는 까닭에 해당 악기들에 특화된 음악경연대회로 볼 수 있다. 다른 부문이 없이 클라리넷 한 악기만 경연을 펼치는 국제대회로는 스페인의 도스 에르마나스 Dos Hermanas 국제클라리넷콩쿨이 있다. 현재 서울시향의 수석 클라리넷주자
얼마 전에 클라리넷을 전공하고 있는 지인에게서 이제 국내콩쿨 입상자에게 주던 병역면제 혜택은 없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동안 국내 유명콩쿨, 즉 동아콩쿨, 중앙콩쿨, 음협콩쿨의 우승자에게 주던 병역면제 혜택이 없어지고, 앞으로는 국제콩쿨 우승자에게만 혜택을 주겠다는 말이다. 국제경쟁력을 중요시하는 글로벌 시대이고, 또 국내콩쿨들은 공정성 측면에서도 자주 비판을 받아왔기에 그런 것들을 고려한 관련법의 개정이 있었던 모양이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 관련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경향신문의 기사이다.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5&artid=16763
예술쪽에서 뛰어난 재능을 소유하여 전도가 유망한 청년들에게 예술가로서 훌륭한 업적을 쌓을 수 있도록 일종의 상으로 주는 병역면제라는 혜택을 앞으로는 국제콩쿨 우승자에게만 주겠다는 발상인데, 필자는 크게 다음의 두 가지 관점에서 이 개정법에 반대한다.
첫째는 그 기준이 너무 급작스레 올라간 것이 아닌가 한다. 예전에는 국내콩쿨 세 개 대회에만 혜택이 있었고, 개정법에는 혜택을 주는 국제콩쿨의 수가 훨씬 많아졌으니 더 쉬워진 것이 아닌가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자신이 어떤 악기를 하느냐에 따른 문제이다. 클라리넷만 하더라도 피아노나 바이올린에 비해 모든 국제콩쿨에 포함된 분야가 아니므로 실제 그 수가 많이 늘었다고는 보기 힘들다. 또 보다 중요한 질적인 측면에서 살펴보면, 그 기준이 더욱 어려워진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세바스티안 만쯔와의 인터뷰에서도 나온 내용이지만 주요 국제콩쿨 클라리넷 부문에 있어 동양인 우승자가 나온 경우는 거의 전무한 실정이며 (클라리넷뿐 아니라 관악전체로 확대해봐도 별반 다르지 않다), 필자는 그 이유가 동양인 학생들 자신에게 있다고 보는 만쯔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기록을 재서 우열을 결정하는 운동경기와는 달리 음악연주는 그 평가에 있어 100% 객관성을 보장할 수 없다. 음악경연대회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회심사위원들의 평가이며, 100% 객관적 기준이란 없으니 결국 심사위원들의 주관적 선호가 반영될 수 밖에 없다 (필자는 지금 국제콩쿨 심사의 공정성에 대해 시비하는 것이 아니다. 음악콩쿨이 자체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현실적 한계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이런 현실에서 피아노나 현악기에 비해 주요 국제콩쿨의 심사위원으로 초빙되는 동양인 연주가는 거의 없다시피 하고, 한국인 연주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관악부문에서는 동양인 우승자가 나오기 어렵고 그만큼 세계적인 관악연주가로 성장하는 연주가도 드물다. 이것은 다시 국제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관악연주가 중엔 동양인 연주가는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 즉 일종의 악순환인 셈이다.
물론 이런 관악계의 현실 역시 피아노나 현악기에서 보듯 차차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특수성은 무시한 채 국제경쟁력강화만을 논거로 내세워 앞으로는 국제콩쿨 우승자에게만 병역면제혜택을 주겠다는 발상은, 이미 기득권을 획득한 구세대가 자신들은 이뤄보지 못한 업적을 신세대에게만 요구하는 가혹한 처사라고 본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하게 지적하고 싶은 것은 재능은 뛰어나지만 집안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학생들에게는 더욱 부당한 기준이라는 점이다.
일단 국제콩쿨은 참가하는 데만 국내콩쿨보다 비용이 배로 든다. 그리고 본질적으로는 앞에서 밝힌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만 음악교육을 받은 한국인 학생이 관악부문에서 우승한다는 것은 아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국학생이라면 최소한 외국의 유명연주가에게 지도를 받을 수 있는 유학시기를 거쳐야 가능한 상황인데, 이것은 부모의 경제적 능력이 충분치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학생의 재능과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이다. 이런 기회균등의 문제에 대해 국내콩쿨을 아예 배제해버린 새로운 개정법의 입안자들은 뭐라고 답변할 것인가? 원래 음악은 부잣집 자식들만 하는거야 라고 대답할 것인가?
둘째는 경향신문의 기사에서도 지적한 문화사대주의가 그것이다. 병역문제는 한국인 남성으로서 지는 의무, 즉 우리의 문제이다. 어디까지나 국내문제인 것이다. 왜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우리의 영재를 평가하는 작업에서조차 다른 나라의 판단을 빌어서 하느냐는 점이다. 이미 우리 음악계는 스스로의 잣대를 통해 뛰어난 영재들을 가려낼 만한 충분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번 개정법에서 인정하고 있는 국제콩쿨들 중 국내 유명콩쿨보다 규모나 역사면에서 떨어지는 콩쿨들이 있을 정도이다. 국내콩쿨들의 학연, 지연에 얽매인 공정성이 문제라면 제도를 개선해서 신뢰도를 높여가면 되는 것이고, 아무래도 국제적인 권위가 떨어진다면 역시 투자를 통해 우리가 직접 우리의 콩쿨을 국제적인 음악경연대회로 만들어가면 되는 문제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음악가들의 교육을 외국인의 손에 맡기고, 그 평가도 외국인의 눈에 맡길 것인가?
필자는 이런 이유로 이번 개정법에 반대하며, 그 보완책으로 국내콩쿨을 다시 병역혜택 범위 안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투자와 개선을 통해 주요 국내콩쿨들이 국제적인 권위를 갖출 수 있도록 유도하는 정책들도 필요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병역법이 인정하는 국제콩쿨들의 검증에도 힘을 기울어야만 한다. 이번 새 법안에서 국제음악협회의 검증을 거친 국제대회들만 인정해 준다고는 하지만, 음악콩쿨은 그 특성상 새로이 생겨나도 빠르게 그 권위를 인정받는 대회들도 있고, 제법 규모나 권위가 있는 기존의 콩쿨들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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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듀오 률의 연주회 후기로 쓴 글인데, 글의 초점이 너무 음악콩쿨에만 맞추어졌다. 다시 연주회 후기로 돌아와 글을 이어가도록 하겠다. 다음에 나오는 세바스티안 만쯔와의 대화는 연주회가 끝나고 있었던 인터뷰 내용이다. 연주회를 주최한 발덴부흐 개신교모임 측에서 공식적인 뒷풀이를 마련해 연주자와 청중들 사이의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루어 졌다. 덕분에 필자도 만쯔와 충분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클박: 먼저 좋은 연주회 감사합니다. 세바스티안, 오늘 연주회 곡목은 모두 20세기에 쓰여진 프랑스 작곡가들의 작품이라 독일식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기엔 더욱 어려웠을 텐데,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만쯔: 네, 그래도 생상 소나타는 아직은 낭만파쪽 음악이라 그런대로 괜찮은데, 프랑쉐와 뿔렁은 특히나 음악적 변화를 잘 표현해야 하는 음악이라 더 어려웠어요.
클박: 앙상블 이름이 Riul 인데, 혹시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작품인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이중주와 관련이 있나요?
만쯔: 네, 윤이상씨의 작품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지금 반주를 맡고 있는 마틴하고 그 곡을 연습하다가 계기가 되어서 팀까지 만들게 되었거든요. 그 작품이름이 한국어로 ‚리울’이라고 해서...
클박: 네, 률 또는 율이라고 합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습니다.
만쯔: 아 그러시군요. 이따가 꼭 정확한 발음 좀 가르쳐 주세요.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물어볼 기회가 없었거든요. 일본친구에겐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다들 대답이 다르더라고요. 한번은 한국의 판소리를 볼 기회가 있었어요. DVD로 본 적이 있는데, 아주 이국적이고 흥미롭더군요. 그 판소리에서 본 음악이 작품 ‚리울’에도 영향을 준듯한데 맞습니까?
클박: 판소리는 성악음악이긴 하지만, 어쨌든 윤이상 선생의 음악은 대부분 한국민속음악을 그 근간으로 하고 있습니다. 율이란 단어는 원래 중국어에서 왔고, 한국과 일본은 여전히 중국글자를 실생활에서 씁니다. 하지만 발음이 다 달라요. 오래 전에 유입되어서 글자는 그대로지만, 발음이 달라져서 그런 겁니다. 말로 하면 서로 못 알아듣지만, 글자로 쓰면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다 이해하죠. 이따가 아예 써서 드릴께요, 가져 가세요 하하.
그건 그렇고, 얘기했던 주제로 다시 돌아갈께요. 저는 독일에서 몇몇의 클라리넷 연주가들과 교사들을 알게 되었는데, 그 중에는 독일식 클라리넷이 뵘식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심지어 어떤 음악은 독일식 클라로만 연주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봤거든요. 저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반대급부로, 그럼 프랑스 클라리넷 음악들은 뵘식으로만 연주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되묻습니다. 그리고 독일식 연주가 중에서 프랑쉐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음반으로 낸 사람은 아직 못 봤다라는 얘기도 빼먹지 않고 해주죠.
만쯔: 아 프랑쉐, 아직 계획 중이긴 합니다만, 바이에리숴 룬드풍크 (바이에른주 방송국)에서 음반을 내려고 하고 있어요.
클박: 오 그래요? 음반나오면 꼭 살께요. 프랑쉐를 독일식 클라로 연주하려면 쉽지 않을 텐데요.
만쯔: 정말 정말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능은 합니다.
클박: 혹시 잭 브라이머가 쓴 클라리넷이란 책 아세요?
만쯔: 아 무슨 책인지는 아는데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어요.
클박: 그 책에서 브라이머 선생이 한 말인데, 프랑쉐 클라리넷 협주곡은 악기가 더 발달을 하던지, 인간의 손이 더 진화를 하던지 해야 한다고 했어요. (만쯔, 클박 다같이 웃음)
오늘 연주회 전곡을 프랑스 음악들로만 채운 독일식 클라리넷주자로서 만쯔씨는 독일식 대 뵘식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만쯔: 제 생각엔 아주 최근에 작곡된 특별한 작품이 아니고서야 어떤 시스템으로 연주하느냐는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고 봐요. 독일식 클라로도 충분히 연주할 수 있거든요. 물론 어렵긴 하지만... 작품이 요구하는 음악을 표현할 수 있으면, 예를 들어 비브라토, 플라터텅잉 등의 기교가 가능하다면 어떤 방식의 클라리넷이든 상관없다고 봅니다.
클박: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독일 관현악단에서는 악기가 다르면, 그러니까 뵘식 연주자에겐 지원할 기회조차 주지 않잖아요. 이런 독일의 관현악단들을 보면 어떤 방식의 클라리넷이든 음악만 표현할 수 있으면 된다라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 거 같습니다. RSO 슈투트가르트의 수석주자 알트만씨는 이건 순전히 독일시장보호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동의하시나요?
만쯔: 반반이죠. 시장보호라는 지적도 맞습니다. 만약 독일의 관현악단들이 뵘식연주자에게도 응시기회를 준다면, 국제적인 지원자들이 몰려올 테니, 지원자가 100명이라면 한 5명 정도만 독일식 연주자일껄요. 그럼 독일식 연주가가 뽑히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겁니다. 경쟁이 안 되는거죠. 이런 시장보호적 관점은 어디나 있어요. 프랑스의 관현악단들도 독일식 연주자에게 응모기회를 안주는 악단들이 많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악기와의 조화라고 봅니다. 뵘식 클라리넷의 인토네이션 - 음고가 틀리다는 얘기가 아니고, 무언가 음색이 달라요. 베를린 필하모니커가 한 번은 스페인에서 사이먼 래틀의 지휘로 객원 클라리넷을 뵘식주자로 쓴 적이 있는데, 래틀씨가 연습이 끝나고 그 연주자보고 다음 연주회때는 독일식 연주자에게 기회를 주겠다고 한 적이 있어요. 연주자의 기량이 떨어져서가 아니고, 래틀씨는 독일인도 아니라, 독일식, 뵘식 이런데 편견이 있는 지휘자도 아닌데, 지휘자로서 그 클라리넷주자의 음색이 뭔가 베를린 필의 사운드에 녹아들지 못한다는 것을 눈치챈 거죠.
클박: 저는 한편으로 독일 관현악단들의 그런 정책을 이해하긴 합니다. 어차피 독일의 관현악단이고 자국의 연주자들을 선호하고 보호하려는 것은 당연한 거죠. 독일식, 뵘식, 양 방식 모두 자신만의 장단점이 있는 거고, 전세계적으로 볼 땐 수가 적은 독일식 클라리넷은 어느 정도 보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뵘식을 쓰는 외국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독일관현악단에서 그렇게 한다면 강제로 바꾸길 요구할 순 없는 문제죠.
만쯔: 클라리넷에 대해 상당히 조예가 깊으신 분 같은데, 오늘 저희 연주회는 어떻게 보셨나요?
클박: 오랜만에 아주 훌륭한 연주회를 봐서 기분이 좋습니다.
만쯔: 감사하지만 그런 일반적인 평 말고, 저희에게 좀 도움이 될만한... 사실 연주회를 많이해도 청중들에게서 듣는 평은 거의 똑같거든요. 저희는 아직 젊은 연주자들이고, 그래서 연주회에 직접 오시는 청중들의 솔직한 비평을 듣고 싶어요.
클박: 그렇게 말씀하시니 솔직하게 제 감상을 말씀드릴께요. 우선 해석에 있어서 오늘 연주하신 곡들은 뭔가 맴도는 듯한 무언가가 있어야 하는데, 약간 부족했어요. 너무 직선적으로 정직하게 연주했다고 할까?
만쯔: 뭔가 좀더 판타지를 가지라는 말씀인가요?
클박: 네, 판타지 그거요. 뭐 독일식 클라리넷의 한계 때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둘 다 웃음). 독일연주자들의 특징이잖아요. 정직하게 연주하기. 그리고 피아노 연주가 좀 혼자 달린듯해요. 클라리넷에게 좀 더 노래할 여백을 주었어야 하는데.
만쯔: 사실 저희도 연주 중에 약간 뜨끔했어요. 가끔 서로 맞지 않는 순간들이 있어서 헤헤
클박: 뭐 개인적인 비평은 이 정도로 하고요, 만쯔씨는 아직 대학생이죠? 학교 다니면서 연주여행 다니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연주회 일정을 살펴보니까 거의 이틀 꼴로 한 번이던데, 이 많은 일정을 어떻게 다 소화하나요, 하루 연주회하고, 하루 이동하고 그러나요?
만쯔: 정말 그래요 하하, 그래도 아주 재미있어요. 매일 새로운 곳을 가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클박: 대학은 졸업하실 건가요? 독주연주가로서 활동하면서 졸업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만쯔: 음대는 거의 졸업반이고, 1, 2학년때 졸업에 필요한 과목들을 많이 이수해 두었거든요.
하지만 교육학을 복수전공하고 있어서, 졸업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4학기째 쓴다쓴다하고 미루고 있네요.
클박: 물론 만쯔씨야 이미 독주자로서 경력을 시작했으니, 대학졸업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겠지만, 나중을 위해 졸업은 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나중에 대학에서 일할 기회도 생길 수 있는 거고.
만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서 대학은 꼭 마칠 생각입니다.
클박: 그럼 졸업하면 좀더 본격적으로 독주자로 나설 건가요?
만쯔: 아직은 둘 다 보고 있어요. 독주연주회도 많이 하고 있지만, 관현악단 객원으로도 많이 다니고 있거든요. RSO, 베를린 필하모니커도 나가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객원을 하면서, 단원모집공고가 나면 응모도 하고 있습니다.
클박: 당신 정도면 독주자로 나서도 충분할 텐데요.
만쯔: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 저는 젊고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단원이 되면 확실한 직업이 생기니까 좋고, 또 독주도 좋지만 관현악단에서 합주하는 것을 매우 좋아하기도 해요. 다행히 독일은 관현악단이 많은 편이고, 아직 클라리넷에 빈 자리가 있는 관현악단들이 있습니다. 그 중에는 단원에게 독주자로서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게 배려해 주는 악단들도 있어요. 그래서 그런 악단을 노리고 있어요 하하.
클박: 교육학 부전공에다가 독주자, 관현악단 단원 양쪽까지 노리는 정말 욕심 많은 모범대학생이군요 하하. 그럼 이제 몇 년 안에 벤쩰 푹스씨 옆에서 연주하고 있는 당신을 볼 수 있는 건가요?
만쯔: 그렇게만 되면 정말 좋겠습니다. 푹스씨 정말 잘해요. 관현악단 단원으로서는 정말 최고라 할 수 있는 연주가예요, 독주는 자주 못 봐서 모르겠지만요.
클박: 여담이지만, 그래도 라이스터 선생은 한 인터뷰에서 엠마누엘 파후드, 알프레히트 마이어는 나의 동료지만, 벤쩰 푹스는 이름을 말하지 않았답니다. 인정하지 않는다는 얘기죠.
만쯔: 그래요, 우와 이건 쇼크인데...
클박: 아니 뭐 라이스터 선생이 인정 안해도 푹스씨가 현재 베를린필의 수석인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고...
만쯔: 어쨌든 스캔들이네요 하하.
클박: 하루에 연습은 얼마나 하세요?
만쯔: 예전에는 6-7시간 정도였는데, 요즘엔 연주회 일정 때문에 많이 줄었고, 못하는 날도 있어요.
클박: 연습에 관련해서 질문하자면, 많은 수의 한국, 또는 중국, 일본학생들이 클라리넷을 공부하기 위해 독일에 오자나요. 독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클라리넷을 전공하는 동양인 학생들이 매우 많습니다. 만쯔씨도 학교에서 동양인 학생들을 많이 봤으니 잘 알겠지만, 이 학생들이 연습을 정말 심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하거든요. 하지만 이상하게도 관악부문에서는 동양인 학생들이 아직 명성있는 국제콩쿨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음악계에서도 흔히 하는 말인데, 우리 현악주자들은 이미 세계적 수준이다, 하지만 관악주자들은 아직 멀었다라고 얘기합니다. 동양인 학생들이 그렇게 연습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국제콩쿨 우승이 어려운 이유가 뭘까요?
만쯔: 좋은 질문입니다. 왜 그런지 아세요? 너무 연습만 해서 그래요.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악기를 조작한다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격과 경험 전체가 묻어 나오는 종합적인 그 어떤 것이잖아요. 때문에 음악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풍부한 인생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양인 학생들은 골방에 틀어박혀서 연습만 하니까, 다른 경험을 할 기회가 없잖아요. 친구들과 대화도 많이 하고, 같이 술도 먹고, 여행도 다니고 뭐 이런게 전혀 없어요. 물론 동양인 학생들은 기교적으로 완벽한 연주를 합니다. 하지만 기교적으로 완벽한 연주를 원하면 기계를 시키면 되는 거지, 사람이 연주할 필요는 없잖아요. 특히나 요즘 국제콩쿨의 경향은 기계적인 기교보다는 음악해석에 있어 누가 더 풍부한 표현을 하는가에 초점을 두거든요, 그래서 동양인 학생들의 성적이 좋지 않다고 봅니다.
클박: 음악연주는 한 사람의 인생경험과 인격이 묻어 나오는 종합적인 예술행위이다... 상당히 동양적인 사고방식이네요. 사실 이런 철학은 몇 천년 전에 중국의 대철학자인 공자가 이미 말한 내용이거든요, ‚음악은 예절에 속하고, 예절은 군자가 꼭 갖추어야 할 미덕이다’. 이런 맥락에서 저는 일부 음악가들이 난 예술가야 라는 생각에 집착해서 꼭 특이하게 보이려는 경우가 있는데, 옳지 않은 생각이라고 봐요. 사실 대가 수준의 연주는 훌륭한 인격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악기연주를 위해 최소 10년이 넘는 연습과정을 거치고, 이 연습이란 것이 자신을 통제하는 것을 배우는 훈련과정인데, 이런 긴 시간의 훈련과정을 제대로 거친 사람이라면 좋은 인격을 갖출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동양인 학생들은 공자의 책들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 할 것 같아요.
만쯔: 네 그래요, 오히려 동양인 학생들이 자신들의 동양의 지혜를 잊어버린 거 같아요.
클박: 이제 국제여행도 많이 다닐텐데, 아시아 공연계획이 있나요?
만쯔: 내년쯤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참 한국청중들은 어떤 곡을 좋아하나요?
클박: 뭐 공연기획 측에서 모차르트를 하라고 하지 않을까요? 전 베버도 좋다고 생각하지만요.
만쯔: 코플랜드나..아 프랑쉐는 어떨까요? 아니면 닐센 협주곡, 닐센도 매우 까다로워요. 프랑쉐는 그래도 다음에 나올 운지들이 어떻게 된다고 예상이 되는데, 닐센은 계속 의외의 운지들이 나오거든요.
클박: 저야 프랑쉐 협주곡을 듣고 싶지만, 한국은 독일과 달라요. 한국입장에서 서양고전음악은 모두 수입된 문화라 팬층이 넓지도 깊지도 않거든요. 그런 곡을 하면 아마 일반청중은 거의 없고, 클라리넷 전공생들만 올걸요 하하.
참, 교수님이 자비네 마이어씨 잖아요 수업방식은 어떤가요? 롱톤, 음계, 스타카토 철저히 나누어서 하는 전통적인 방식인가요? 그리고 선생님으로서 마이어씨는 어떤 분인가요, 아주 무서운 선생님?
만쯔: 음...좀 특이해요. 기술적인 문제보다는 음악적인 문제를 많이 파고들고요. 특이해서인지 학생들 중에는 수업방식이 맞지 않다고 말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저의 경우에는 다행히 잘 맞습니다. 그다지 무서운 선생님은 아닙니다. 좋으신 분이고, 예민하시긴 하지만 주로 스스로 삭히는 그런...
클박: 요즘 들어서 살이 너무 빠졌잖아요, 전 어디 아프시거나 혹시 거식증이라도 걸리신게 아닌가 했어요.
만쯔: 거식증은 아닌데, 살이 너무 빠지셔서 저희들 모두 걱정하고는 있습니다. 너무 스스로 다그치는 성격이세요.
왼쪽이 클라리넷의 세바스티안 만쯔,
오른쪽이 피아노의 마틴 클레트
마지막으로 세바스티안 만쯔의 악기 셋업을 공개하며 이번 후기를 마치고자 한다. 만쯔가 직접 이메일을 통해 알려준 내용이다.
Klarinette: H. Wurlitzer, Modell 100c S, Baujahr 2008, 3. Quartal
Mundstück: "3WZ" (sehr neues Mundstück von Wurlitzer, entstanden in Zusammenarbeit mit Zeretzki)
Blattschraube: "GF-System" (vergoldet)
Blätter: "Arundos"-Blätter, Modell "Aida"
클라리넷: 부를리쩌 100c S (신제품 배럴), 제작연도 2008년 3분기
나팔꼭지: 3WS (부를리쩌 신제품)
조리개: GF-System (금도금)
리드: Arundos, 모델 Aida
ARD콩쿠르 우승 이후 인터뷰 동영상
추신. 윤이상 선생의 작품을 좋아하고, 앞으로 한국에서의 연주회도 계획하고 있다는 만쯔는 한국 팬들의 질문에 대해 성실히 답변할 것을 필자에게 약속했다. 이 글을 읽은 독자 중 만쯔에게 궁금한 것이 있으면 무엇이라도 댓글로 남겨주시길 부탁 드린다. 어느 정도의 질문이 모이면 필자가 번역해서 만쯔에게 이메일을 통한 인터뷰형식으로 보낼 생각이다. 기탄없이 질문해 주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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