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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리넷 음향학

독일식 클라리넷과 프랑스식 클라리넷의 차이점 1: 역사

클라리넷 연주인들에게 있어 욀러식 클라리넷 (Oehler 방식; 독일식) 이 더 좋은가, 아니면 뵘식 클라리넷 (Boehm ; 프랑스식) 이 더 좋은가 하는 문제는 클라연주에 있어 비브라토를 쓰는 것이 좋은가 하는 문제만큼 서로 반론이 격렬한 토론거리다.

 

특히 한국에선 클라리넷 교사들 중 다수가 욀러식 클라리넷을 사용하는 독일어권에서 유학을 했지만, 절대다수가 여전히 뵘식을 사용하기 때문에 욀러식 클라리넷에 대해선 별로 접할 길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한국에서 욀러식을 사용하는 유명연주자는 예술종합학교의 광호 교수가 거의 유일하다시피 하다. 이것은 대학 이상의 음악교육은 독일어권에서 받았을찌라도, 악기를 배우기 시작할때는 한국에서 예외없이 뵘식 클라리넷으로 배우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해서 막연히 동경을 갖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클라리넷 애호가들을 보면 은근히 독일클라리넷 우월주의를 갖고 있는 이들이 많은 것을 보게된다 (물론 이것은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이 글의 목적은 한국의 클라리넷 애호가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함으로써 선입견이나 잘못된 편견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아울러 음악유학을 독일어권으로 가려고 하는, 또는 이미 유학중인 클라리넷 전공생들은 한 번쯤은 반드시 거치게 될, 악기를 욀러식으로 바꿔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 해결에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기 앞서 용어를 명확히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가 흔히 현대 서양 클라리넷을 독일식과 프랑스식으로 구분하여 부르는 것은, 현재 독일에서 널리 쓰이는 욀러 마개방식과  프랑스에서 쓰이는 뵘 마개방식을 편의상 그렇게 부르는 것 뿐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 국가적으로 클라리넷의 표준을 정한 적도 없으며, 또한 역사적으로 많은  악기개량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름을 딴 다양한 마개방식 Key system 들이 시대별로 인기를 끌었기 때문에, 어느 한 가지만 딱 집어서 독일식, 프랑스식이라고 부르기엔 사실 무리가 따른다. 예를 들면, 아직도 영미권 국가에선 독일식 클라리넷 German clarinet 이라고 하면  19세기 후반 인기가 많았던 알버트식 Albert 클라리넷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알버트식 클라리넷은 벨기에의 알버트가 뮐러식 클라리넷을 바탕으로 개량한 것인데 이 방식이 영국에 German클라리넷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인기를 끈 것에 연유한다 (David Pino.  The Clarinet and Clarinet Playing. Dover Publications inc. 1980, 216).

 

1950년대에 개발에 성공한 부를리쩌 회사의 개량뵘도 마개방식은  비록 뵘식을 채택한 것이지만 안쪽관의 지름과 모양은 독일클라리넷 전통을 따른, 엄연히 독일인 제작자가 독일에서 개발한 독일산클라리넷이다. 이렇듯 그냥 독일식으로 부른다면 어떤 방식을 가리키는지가 불명확해지므로, 음악사적 흐름에서 프랑스식에 대립되는 개념으로써 독일식이라고 쓰는 경우를 제외하곤, 좀 귀찮더라도 현재 마개방식의 개량자 이름을 따서 각각 독일식은 욀러식 클라리넷, 프랑스식은 뵘식 클라리넷 으로 부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한국에선 독일식을 에라식이라고도 부르는데, 그것은 욀러의 일본식 발음이 한국으로 건너와 잘못 쓰이고 있는 것이다.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의 역사

 

1700년대 초에 발명되어 서양음악사에 등장한 클라리넷은 현대 서양 관현악단 Orchestra 악기중에 가장 짧은 역사를 갖고, 그만큼 가장 짧은 시간동안 변화를 거듭한 악기이다. 최초의 클라리넷은 샬뤼모라고 불리던 당시 유행하던 민속악기 – 악기라기보다는 장난감에 가까웠던, 테너 리코더의 모양에다 리드를 덧붙이고 두 개의 마개를 추가한 매우 간단한 형태였다. 이 간단한 형태에서 표준으로 쓰이는 뵘식 17마개/6반지모양 마개 클라리넷이 되기까지는 수도 없는 개발을 거듭해왔다.

 

클라리넷 발달사는 곧 마개방식 발달사이다. 초기 클라리넷은 모든 반음연주가 불가능했스므로, 악기개량자들은 일단 모든 음을 자유롭게 연주할 수 있는 클라리넷 개발을 최우선시 하였고, 이 문제를 마개를 덧붙여 가는 방식으로 해결해 나갔다. 클라리넷 발달사는 음악 시대사조의 연대와 일치하진 않지만 편의상 나눠보는데는 무리가 없다. 대개의 클라리넷 연구가들이 인정하는 가이드-라인은 바로크 시기의 클라리넷은 2마개/표준음고 415 Hz, 고전파 시기의 클라리넷은 5 마개/ 표준음고 430 Hz, 낭만파 시기의 클라리넷은 13마개/ 표준음고 435 또는 440 Hz 이다 (Colin Lawson. The Early Clarinet: A Practical Guid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00, 22). 클라리넷 발달사는 다음 기회에 상세히 다루도록 하고, 이 글은 독일식과 프랑스식 클라리넷이 주제이므로 낭만파 이후 뵘식과 욀러식으로 대변되는 현대 클라리넷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현대 클라리넷

 

현대 클라리넷의 출발에 대해 살펴보려면 먼저 이반 뮐러 Iwan Müller 1786-1854 라는 한 인물를 알아야 한다. 당대의 클라리넷 명인으로 스스로 악기개량을 꾸준히 거듭한 이반 뮐러는 당시로선 가장 수가 많은 13마개 클라리넷을 개발해 낸다. 당시까지는 마개방식의 발달이 충분치 못해 하나의 클라리넷으로 모든 음을 다 연주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클라리넷은 특정한 조성을 연주할 수 있도록 거기에 맞추어 제작될 수 밖에 없었고, 따라서 연주자들은 각각 다른 조성을 연주하기 위해 여러 개의 클라리넷을 사용했다. 뮐러식 클라리넷 13개로 단순히 마개수만 늘린 것이 아니라 연주가 불가능했던 반음들 모두를 연주할 수 있도록 마개의 디자인을 달리 하고 스프링을 사용해 배치를 교묘히 했으며, 마개 끝에 양털로 채운 가죽패드를 달았고, 소리구멍 위치를 정확히 하여 음질과 억양 측면에서도 획기적인 개선을 이루었다. 가히 클라리넷 개혁이라 할 만한 개선으로 뮐러의 클라리넷은 거의 현대 클라리넷의 모양을 갖춘 뛰어난 클라리넷이었다. 뭘러의 이 업적은 데너의 악기발명 이후 클라리넷 발달사에 있어 가장 큰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뮐러식 클라리넷, 제작자 David, 1840

(http://www.music.ed.ac.uk/euchmi/ugw/ugwf1i.html)

 

1812년 뮐러는 자신의 새로운 클라리넷을 모든 음들이 연주가능한, 즉 악기 하나로 모든 조성을 연주할 수 있는 ‚다중조성 클라리넷 clarinette omnitonique’이라고 소개하면서 당시 클라리넷 교육의 중심지였던 파리음악원에 심사를 의뢰했지만, 클라리넷 교수였던 레퍼브레 Xavier Lefèvre 를 필두로 한 심사단은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하나의 클라리넷으로 모든 조성을 연주하게  되면 특성 조성에 맞추어 제작된 각 클라리넷의 고유 음색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그 조를 염두에 두고 음악을 쓴 작곡가의 의도를 제대로 살릴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Jack Brymer. Yehudi Menuhin Music Guides: Clarinet. Kahn & Averill. 1976, 45).

 

하지만 이 논지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이 역사적으로 클라리넷의 구조발달이 불충분했기 때문에  작곡가들이 그에 맞춰 클라리넷으로 연주하기 쉬운 조를 선택해서 작곡한 것이지, 조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작곡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여러면에서 획기적인 개선을 이룬 뮐러식 클라리넷은 당대의 클라리넷 제작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고, 현대  클라리넷의 전형을 제시하였다.


 

뵘식 클라리넷

 

현대에 와서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쓰이는 뵘식 클라리넷, 플륫연주자이자 악기제작자였던 테오발드 뵘 Teobald Boehm 1832년 이미 선보였던 새로운 플륫 마개방식을 악기제작자였던 뤼-아구스떼 부페 Louis-Auguste Buffet 가 당시 파리의 클라리넷 명인이자 파리음악원 교사로 일하고 있던 클로제 Hyacinthe Klosé 1808-1880 와의 협력을 통해 클라리넷에 적용하는데 성공하여 1839년에 공개한 것이다 (Rudolf Mauz. Die Klarinette. Schott Music International. 2006, 35). 뵘 자신은 클라리넷 개량에 직접 관여한 바는 없다고 알려져 있다. 당시 부페집안은 악기제조를 가업으로 하였고, 파리에 악기공장을 갖고 있었던 데니스 부페-오거의 공장을 아들이었던 쟝-뤼 부페가 물려받아 창립한 회사가 바로 오늘날 클라리넷 제조로 유명한 부페 크람뽄 회사이다. 뵘식 클라리넷의 발명자 뤼-아구스떼는 바로 쟝-뤼의 삼촌이다.

                            

                                  
 

         뵘식 다-클라리넷, 제작자 Buffet jeune, 1850             뵘식 클라리넷의 보급자 클로제              

(Conny Restle & Heike Fricke. Faszination Klarinette. Prestel Verlag. 2004, 101)

 

부페의 뵘식 클라리넷은 윗관과 아랫관의 마개들이 전부 하나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마개만 눌러도 전혀 다른 곳의 구멍까지 막을 수 있는 획기적인 마개방식을 제시했다. '움직이는 반지모양 마개의 클라리넷 clarinette aux anneaux mobiles' 으로 소개되면서 판매초부터 주목을 받았고, 협력자였던 클로제가 후에 파리음악원의 중요한 보직을 맡게 되면서 점점 더 많은 사용자들을 얻게 된다. 클로제가 쓴 클라리넷 교본은 아직도 학생들이 가장 많이 공부하는 교본 중 하나이다. 뵘식 클라리넷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도 소개되고, 특히 1900년대 초 미국 시장에서 부페 크람뽄사의 제품들이 선풍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뵘식 클라리넷이 클라리넷의 세계표준으로 가는 길을 선점했다. 연주자의 취향에 따라 마개 몇 개를 추가할 수 있지만, 현재 표준으로 쓰이는 것은 17마개/6반지모양마개 이다. 이 뵘식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프랑스식으로 부르는 마개방식이다.  


 

욀러식 클라리넷

뵘식 클라리넷의 발명 이후 프랑스와는 달리 독일 클라리넷 연주자들은 뵘식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다가, 1853년 유명한 하인리히 베어만의 아들인 칼 베어만 Carl Beaermann 과 악기제조자였던 오텐슈타이너 J. G. Ottensteiner 가 뵘식과는 다른 방식을 개발하면서 전환점을 맞게 된다 (Rudolf Mauz. Die Klarinette. Schott Music International. 2006, 35). 베어만-오텐슈타이너 클라리넷으로 불리는 이 방식은 뵘식과는 다르게 윗관과 아랫관의 마개가 따로 움직이는 방식이긴 하지만, 뵘플륫의 방식인 움직이는 반지모양 마개방식은 채택하였다. 뮌헨 왕립음악원의 교수로 명성이 높았던 칼 베어만은 자신이 개발한 이 방식을 위해 클라리넷교본을 썼고, 독일어권의 클라리넷 교육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 교본 덕분에 베어만-오텐슈타이너 방식은 독일어권에 한해서 널리 쓰이게 된다브람스의 클라리넷 주자로 유명한 리햐르트 뮐펠트 Richard Mühlfeld 1856-1907 도 바로 이 오텐슈타이너식 클라리넷을 사용했다.

 

 

베어만-오텐슈타이너식 가-클라리넷, 제작자 Johann Georg Ottensteiner, 1870

(Conny Restle & Heike Fricke. Faszination Klarinette. Prestel Verlag. 2004, 90)


현재 우리가 독일식 클라리넷이라 부르는 욀러식 클라리넷 은 베어만-오텐슈타이너 방식을 바탕으로 베를린 필하모니의 창단발기인이었던 클라리넷 주자 오스카 욀러 Oskar Oehler 1858-1936 가 여러가지 점들을 더욱 개량하여 1900년쯤 선보인 클라리넷이다 (Rudolf Mauz. Die Klarinette. Schott Music International. 2006, 36). 욀러식은 등장 이후 그 우수성으로 차차 독일식 클라리넷의 표준으로 자리잡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오스카 욀러 Oskar Oehler             욀러식 다-클라리넷, 제작자 Oskar Oehler, 1905         

(Conny Restle & Heike Fricke. Faszination Klarinette. Prestel Verlag. 2004, 104)

오스카 욀러는 1889년 제작소를 베를린에 세우고 이 후 클라리넷 제작에 집중하는데, 그에게는 세 명의 제자가 있었다. 우에벨 F. Arthur Uebel, 바르쉐프스키 Ludwig Warschewski 와 토트 K.F. Todt가 그들이다 (http://en.wikipedia.org/wiki/Oehler_system). 이 중 바르쉐프스키는 스톡홀름으로 이주해서 스톡홀름 필하모니의 독주 클라리넷주자로 활동하였고, 나머지 둘은 독일에서 클라리넷 제작자로 명성을 얻게 된다. 우에벨 클라리넷은 디터 클뢰커 등의 유명 연주자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칼 라이스터도 처음 베를린 필하모니에 입단했을때 우에벨 클라리넷을 사용했다가 후에 부를리쩌 클라리넷 으로 바꾼다. 1970년 이전의 부를리쩌는 좀 더 넓은 구멍지름을 사용해서 음정면에선 정확했지만, 소리는  우에벨 클라리넷과 매우 비슷했다. 부를리쩌 클라리넷은 1970년 이후 몇 가지 디자인 변화를 주면서 지금은 독일 각 오케스트라의 주자들과 유명독주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상표가 되었다.


현재 판매되는 욀러식 클라리넷도 마개수에 따라 모델이 다른데 아래 그림 왼쪽의 20마개-클라리넷은 주로 초보자용으로 쓰고, 오른쪽의 24마개-클라리넷은 흔히 Volloehler () 또는 full Oehler () 라고 하며 주로 전문연주가들이 사용한다.  

 

                                            

               

욀러식 20마개            욀러식 24마개

(Rudolf Mauz. Die Klarinette. Schott Music International. 2006, 60)  



여기까지 독일과 프랑스, 두 나라의 클라리넷 발달사를 정리해보면;

                                                                                  
낭만파 시기의 클라리넷-> 뮐러식 클라리넷 1812
                                     -> 프랑스: 뵘식 클라리넷 1839 

                                          -> 독일: 베어만-오텐슈타이너식 1853 -> 욀러식 클라리넷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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