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독일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RSO의 독주클라리넷주자인 디릌 알트만 Dirk Altmann씨가 독일 음악잡지인 rohrblatt와 1998년 인터뷰한 기사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양쪽 방식을 모두 소화해내는 클라리넷 전문연주가의 독일식과 프랑스식 클라리넷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기사를 흔쾌히 보내준 알트만씨에게 지면을 통해 감사드린다. 아래 첨부파일은 독어기사 원본이다.
이 인터뷰는
디릌 알트만, 1965년 출생, 일곱살때 클라리넷을 시작. 1981년 전독일 콩쿨인 „청소년 음악“에서 1등. 하노버 음대 헬무트 파울쉑 교수 사사, 대학시절 젊은 독일 필하모니의 단원으로 활동. 1982-85년 헤르베르트-폰-카라얀-재단 장학생으로 베를린 칼 라이스터 사사. 1985년부터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Radio-Sinfonieorchester Stuttgart (이하 RSO) 독주클라리넷 주자. 1988-89년 전독 경연을 통해 뽑은 „젊은 예술가 공연“의 단원. 이후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하노버 라디오-필하모니 Radio-Philharmonie Hannover, 북서독 필하모니 Nordwestdeutsche Philharmonie 와 협연, 이탈리아로 CSFR와 함께 연주여행을 다녔다. 근래에 들어선 실내악과 현대음악 (Audace-Trio, Ensemble Varianti) 연주활동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연주곡목은 잘 연주되지 않는 곡들도 포함하는데, 파울 힌데미스의 클라리넷과 콘트라바스를 위한 „음악 화원“은 1939년 작곡된 다른 소나타와 함께 녹음하여 음반 „Leÿptziger Allerleÿ“ (Tacet 59)으로 출시되었다. 로베르트 슈만의 „민족의 소리“ (바셋호른으로 연주) 음반도 곧 출시될 예정이다.
베릌: 이미 확고히 인정받은 독일인 관악독주자로서 명성있는 방송교향악단 중 하나인 슈투트가르트 라디오 방송교향악단 단원인 당신이 어떻게 해서 뵘클라리넷으로 바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까?
알트만: 교향악단 활동을 5년 정도하고 나니까 음악가로서 정체기가 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40년간 교향악단에서 일할 생각을 하니 끔찍할 정도였죠. 그래서 점점 클라리넷 연주의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현대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연주방법과 연주기술, 예를 들면 다중음, 사미분음, 혀로 때리기 등등이 뵘식 클라리넷과 관련이 깊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또한 작곡가들의 이해력부족을 종종 실감했는데, 그들에게 제가 잘 써먹던 말인 „독일식 클라리넷으론 연주할 수 없습니다“라고 할때마다 말이죠. 이후 스위스나 프랑스 출신 클라리넷주자들을 알게되면서, 그들은 이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이것이 제가 뵘식 클라리넷, 그러니까 세계적으로 90퍼센트 이상의 클라리넷 주자들이 연주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 생각인데, 앞으로는 유럽의 젊은 연주자들은 뵘식 클라리넷에 대해 알지 못하면, 경력을 쌓기가 불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베릌: 어떻게 익히셨죠? 뵘식 클라리넷과 운지표, 뱅드렝 리드 몇 통을 가지고 무인도에 가셨나요?
알트만: 일단 뵘식 클라리넷 하나를 샀죠. 먼저 눈에 띄인 것이 독일식 클라리넷 하나를 살 돈으로 뵘식은 내림마- 와 베이스-클라리넷를 세트로 살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클라리넷은 물론 운지표와 함께 배달되었고요. 그래서 여름휴가동안 매일 여섯 시간씩 집중적으로 뵘식으로 바꾸는 연습을 했습니다.
베릌: 새로운 방식을 배우기 위해 어떤 연습곡을 이용하셨나요?
알트만: 놀랍게도 새로 공부한 작품들, 그러니까 도네이션의 „끌레어“ 같이 기교적으로 매우 어려운 곡들이 제가 원래 즐겨하는 곡들보다 오히려 쉽게 느껴지는거 있죠. 그 외에는 특별히 뭘 더 한것은 아니고 베어만이나 예텔의 연습곡들을 이용했습니다.
베릌: 당신의 소리는 뵘식 클라로도 꽉 차고 알맹이 있는 소리가 납니다. 그래서 동료들은 당신이 뵘식 클라로 연주했단 것을 알게되면 깜짝 놀라기도 하는데요. 그럼에도 독일에선 흔히 뵘식 클라로는 욀러식 클라의 음색을 능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많은데, 이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알트만: 정반대입니다. 제 생각엔, 무엇보다 관악연주자 개개인의 소리에 대한 생각이 결정한다고 봅니다. 체코계 클라주자 또는 미국계 클라주자를 예로 들어볼까요. 둘 다 부페-끄람뽄으로 연주를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다른 소리가 납니다. 제 경험으론 개인적인 소리에 대한 철학을 욀러식보다 뵘식 클라리넷으로 연주할때 더욱 쉽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프랑스식“ 악기가 더 중립적이죠. 그래서 훨씬 맘대로 다룰 수가 있습니다. 학생시절 저는 드뷔시의 랩소디 연주하기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가벼움과 시정, 그 뭔가 눈앞에 맴도는 그것. 그것을 표현할 수가 없었죠. 하지만 이 작품을 뵘식 클라로 연주하면 그 참 맛이 나죠! 같은 경험을 프랑셰 협주곡에서도 했습니다. 프랑셰 협주곡을 독일식 클라리넷으로 연주하면 그 가치가 떨어집니다. 말그대로 삽질일 뿐이고, 전혀 어떤 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또한 닐센 협주곡의 정신분열적인 세계나 핀지 협주곡의 특별한 음색은 뵘식 클라리넷으로 할때 보다 좋은 연주를 할 수 있습니다 – 정말 재밌는 연주를 할 수 있는거죠!
베릌: 당신은 하노버 음대의 파울쉑 교수님한테서 공부를 하셨는데요. 같은 음대에 있었던 한스 다인쩌 교수의 독주자교실에도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나중에는 클라리넷 현대음악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시게 되잖아요.
알트만: 제가 하노버 음대에서 공부할 당시는, 적어도 독일에선 목관악기에 관한한 „중심지“였죠. 한스 다인쩌 교수님께 인상이 깊었던 것은, 수업내용의 폭이 일반적으로 가능한 클라리넷 연주를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고백할 것은, 당시엔 제가 현대음악에 그렇게 관심이 있지 않았습니다. 제 목표는 관현악단이었기 때문에 거기에 집중을 했죠. 헬무트 파울쉑 교수님은 제 은사십니다. 제가 겨우 나이 스무살때 슈투트가르트 방송교향악단 독주자 자리를 얻을 수 있도록 해 주신 분입니다. 늘 감사드리고 있죠. 저는 이런 스승과 제자의 좋은 관계를 모든 젊은 연주자들이 맺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경험했듯이, 이런 관계는 직업연주자의 길을 걷는데 하나의 디딤돌이 되기 때문입니다.
베릌: 본보기로 삼으시는 분들이 있습니까, 누구죠?
알트만: 물론이죠! 똑똑한 젊은 연주자라면 먼저 가능한 서로 다른 연주가들로부터 배워보려고 노력합니다. 저의 경우 선생님 이외에도 헤르베르트-카라얀-재단에서 보낸 시간들이 큰 도움이 됬습니다. 18세의 나이로 베를린 필하모니커의 독주자 자리에 앉아본다는 것은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물론 칼 라이스터 선생님의 연주도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이후에는 제가 방송교향악단에서 이미 5년간 활동을 했을때 인데, 하인쯔 홀리거와 함께 일한 것이 매우 기억에 남습니다. 새로운 것, 혁신적인 것에 „눈을 뜨게“ 되었죠. 그와 함께 하면서, 그의 작품들이 결국에는 저를 뵘식 클라리넷의 세계로 인도해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또 알랭 데미앙, 파리의 앙상블 엥떼르콩탕포렝 Ensemble Intercontemporain 수석 클라리넷주자를 알게 되었죠. 그만의 연습방법이요, 어떻게하면 짧은 시간에 복잡한 새 곡을 익히는지, 본보기로 삼을만 합니다.
베릌: 어째서 독일 관현악단들은 새 단원을 모집할때 „독일식 클라리넷“이란 제한을 둘까요? 당신 생각을 말씀해 주시죠.
알트만: 글쎄요 추측만 해 볼 수 있는 문제인데, 제 생각엔 일종의 보호주의 같은 겁니다. 겁이 나기 때문이죠. 외국 연주자들이 자리를 다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이에 관해 저는 경고를 보냅니다. 이미 독일 연주자들은 오직 적은 수만이 클라리넷 음악 전반에 걸친 곡들을 겨우 소화해낼 수 있습니다. 기껏해야 베르크와 스트라빈스키, 정말 현대적이다 해야 불레즈 („도메인스 Domaines“ 1968년작) 정도이죠. 이래가지고는 유럽수준에 비추어볼때 경쟁력이 없습니다 – 전통음악에서 왔다 갔다할 뿐이죠.
베릌: 당신이 본보기로 삼는 연주해석이 있습니까? 좋아하시는 음반들을 좀 말씀해 주시죠.
알트만: 본보기가 있죠. 모든 젊은 연주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은 소리나 기교만을 듣지 말라는 겁니다. 언제나 연주전반에 걸친 맥락 속에서 음반을 들어야 하는데, 작품의 내용과 클라리넷의 역사를 같이 보는 것이죠. 관현악단과 실내음악 활동, 그리고 관현악단의 임원으로서 일하는 것과 가족 (세 명의 딸)과의 시간도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음악을 듣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지만, 저와 늘 함께하는 음반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브람스 오중주의 서로 다른 해석, 칼 라이스터 (아마데우스 사중주단) 음반과 레지날드 켈 (부쉬 사중주단), 스탠리 드루커가 뉴욕 필하모니아와 연주한 코리글리아노 협주곡과 원작에 충실한 해석인 에두아르트 브룬너의 윤이상 협주곡들이 그것이죠.
현대 클라리넷의 기교가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다면 알랭 데미앙이 연주한 불레즈의 „L’ombre double“ 음반을 추천합니다.
베릌: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주 부탁드립니다.
우리말 옮긴이:
© world copyright 2007 by Seung Soo 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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